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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 억압된 죽음과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다 1. 미스터리를 넘어선 민속공포극: 장르의 재배치와 의도적 해체『파묘』는 표면적으로는 미스터리와 오컬트가 혼합된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민속적 정서와 역사적 불안을 바탕에 둔 복합 장르다. 영화는 무속신앙, 풍수, 조상 숭배와 같은 전통적 세계관 위에 현대적 부패와 권력의 얽힘을 포개며,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문화적 긴장감을 창출한다. 특히 ‘묘를 파낸다’는 행위는 단순한 주술이나 문제 해결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금기와 전통, 권력과 책임 사이의 충돌을 상징하는 의례로 기능한다.감독은 이 설정을 통해, 한 사회가 과거의 망령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묻는다. 극 중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숨기거나 왜곡하며, 그 결과로 묘의 기운이 흐트러지고, 균형이 무너진다. 결국 파묘는 '숨.. 2025. 5. 15.
《수유천》 - 시간에 잠긴 상처, 치유되지 않은 기억 1. 도심 속 물줄기의 정서적 상징화: 공간이 곧 주인공이다『수유천』은 서울 북부 지역을 흐르는 실제 하천 ‘수유천’을 중심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단순한 장소의 기능에 머물지 않고 공간 자체를 하나의 내면화된 캐릭터로 치환한다. 영화 속 수유천은 물리적 흐름이라기보다, 주인공의 기억, 시간의 흐름, 억눌린 감정의 통로로 기능한다. 감독은 이 하천을 통해 관객이 익숙히 알고 있는 도시 공간을 낯설게 전복시키며, 무심히 지나치던 풍경이 얼마나 개인의 정서와 밀접히 맞닿아 있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주인공은 수유천 주변의 변화 속에서 과거의 단서를 마주하고, 오래된 기억과 감정에 휩쓸린다. 특히 영화는 수유천의 물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콘크리트 제방의 균열 등 사소한 시각·청각적 요소를 치밀하게 활용하여.. 2025. 5. 15.
《무도실무관》 - 진실을 가리는 힘과 침묵의 연대 1. 무도는 어떻게 '실무'가 되었는가: 이념과 생존의 간극『무도실무관』은 그 제목부터 명확히 선언하듯, 무도가 단지 수련의 대상이 아닌 생존과 연결된 ‘실무’로 변모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영화는 전통적인 무도의 이념—예를 들면 인내, 절제, 도(道)의 추구—이 더 이상 도장의 중심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일찌감치 보여준다. 실제로 도장은 경호, 제압술, 실전 대응을 목적으로 하는 훈련장이 되어 있으며, 수련자들은 인격 수양이 아닌 직업 훈련의 일환으로 무술을 배우고 있다. 이는 무도계 전체가 자본주의적 구조 안에서 어떻게 기능적 역할로 재편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주인공은 이 현실 속에서 고립된 이상주의자로 보인다. 그는 오랜 시간 쌓아온 무도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려 하지만, 그의 도장 운영은.. 2025. 5. 15.
《베테랑 2》 - 권력과 이익의 그늘에 맞서는 정의 1. 속편의 위기와 정면 돌파: 확장된 ‘정의 서사’영화 ‘베테랑 2’는 전작의 유쾌한 에너지와 통쾌한 정의 구현을 이어받아, 속편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독자적인 이야기 구조와 사회적 메시지를 강화하며 돌아왔다. 특히 이번 작품은 단순한 범죄 응징을 넘어, 한국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비리와 권력의 비호에 대해 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발언한다. 이는 단지 액션 스릴러로서의 재미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풍자의 도구로서 기능하는 장르적 확장을 꾀한다.전편의 주인공 서도철 형사(황정민)는 이번에도 중심 인물로 활약하지만, 그 주변에는 새로운 세대와 가치관이 대립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정의의 기준도 변해야 함을 지적한다. 정의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 2025. 5. 15.
《한국이 싫어서》 - 선택된 이방인의 고독한 반문 1. 도피로서의 이민, 혹은 자기 삶을 찾아가는 여정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이민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존재감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제목만 보면 자극적인 탈출 선언처럼 느껴지지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훨씬 복합적이다. 주인공 ‘계나’가 선택한 프랑스행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고정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결정의 선언이다. 이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기 삶을 능동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영화는 이를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지하게 풀어낸다.‘계나’는 그 누구보다 평범한 청년이다. 특별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야망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에 의문을 제기하며, 거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으로 ‘이민’을 선택한.. 2025. 5. 14.
《필사의 추격》 - 생존을 위한 마지막 질주의 윤리 1. 추격이라는 장르적 외피에 담긴 인간 심리의 분해영화 ‘필사의 추격’은 표면적으로는 범죄 스릴러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추격이라는 극단적 긴장 상황을 통해 인간 심리를 해부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강하게 녹아 있다. 단순한 ‘잡고 잡히는’ 구조를 넘어서, 이 영화는 추격 그 자체가 하나의 은유로 작동하며, 각 인물의 내면 상태와 윤리적 딜레마, 존재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으로 파고든다.도망자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다. 그가 도망치는 이유는 단지 체포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탈주이자,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적 확신으로부터의 회피다. 반면, 추격자는 법과 정의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 그에게도 내면 깊은 곳의 분노와 의심이 자리하고 있다. 감독은 이처럼 쫓는 자와 쫓기는.. 2025.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