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생과 공존: 외부 존재의 내면화
《베놈 3》은 인간과 외계 기생체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외피를 입고 있으나, 그 핵심에는 공존이라는 철학적 주제가 자리한다. 시리즈의 전작들이 베놈과 에디 브록의 관계를 단순히 기능적 결합 또는 내적 갈등으로 묘사했다면, 이번 작품은 두 존재가 어떻게 하나의 주체로 통합되며 각자의 자아를 재구성하는지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영화는 ‘기생’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사회적 관계로 확장시킨다. 타자의 침입이 자아의 해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의 생성이라는 역설로 전환되는 지점이 바로 이 시리즈의 독특한 미학이자 핵심 질문이다. 에디 브록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자아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베놈 역시 타자로 남지 않는다. 두 존재는 점차 분리 불가능한 제3의 정체성으로 융합되며, 그 과정은 곧 인간 내면의 다양한 충동, 공포, 자기 이해의 과정과 직결된다.
2. 타자의 얼굴: 윤리적 괴물의 재정의
베놈은 단지 파괴적인 외계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 잠재된 억압된 감정, 충동, 욕망의 구체화된 형상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괴물이 타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점차 그 윤곽이 친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베놈을 통해 타자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 감춰진 낯선 자아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베놈은 더욱 정서적인 반응을 보이며, 인간의 윤리와 도덕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는 단순히 싸우고 파괴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고민하는 괴물로 그려진다. 감독은 이를 통해 기존 히어로 장르의 이분법적 선악 구도를 해체하고, ‘괴물도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이 질문은 관객으로 하여금 괴물과 인간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3. 분열의 자아, 다중우주의 거울
《베놈 3》은 다중우주라는 개념을 단순한 플롯 장치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자아 정체성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메타포로 활용한다.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하는 또 다른 에디와 베놈의 모습은 ‘나’라는 존재가 고정된 단일한 정체가 아님을 시사한다. 이는 동시대 인간의 자아에 대한 인식 변화, 즉 유동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정체성 개념과 연결된다. 에디는 타 차원의 자신을 마주하면서 자아의 경계가 얼마나 유연하고 불안정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내면화하며, 존재의 본질을 묻는 실존적 사유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를 화려한 시각적 장치와 결합하여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동시에, 그 안에 깊이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숨겨두고 있다.
4. 시청각 언어와 내면 심리의 공명
이번 작품은 기존 시리즈보다 훨씬 밀도 있는 시청각적 연출로 내면 심리를 구현한다. 심비오트의 움직임은 액체적 질감을 강조하면서 신체 내부로 스며드는 불안을 시각화하고, 사운드는 저주파와 심장 박동음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감각적으로 긴장을 증폭시킨다. 조명과 색채 대비는 인간과 괴물, 현실과 환상을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동시에,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마다 의도적으로 대비를 붕괴시킨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심비오트가 에디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장면은, 단순한 액션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감정적 해소의 절정으로 기능한다. 이는 괴물의 언어로 표현되는 인간 심리의 본질을 드러내며, 영화가 표방하는 심리적 SF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5. 이 영화는 어떤 점에서 응답을 이끌어내는가
《베놈 3》은 괴물이란 단어의 의미를 근본부터 다시 정의한다. 이 작품은 선악의 구도를 넘어, 인간 내면에 자리한 이질성과 그 공존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결국 베놈은 우리 안의 또 다른 자아이며, 이 영화는 그 자아를 배척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윤리임을 말하고자 한다. 다중우주라는 외형은 그저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다양한 자기 자신과의 화해 가능성을 상징하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정체성 혼란, 소외, 내면 분열과 직결된다. 괴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곧 불완전한 자신과의 공존을 의미한다. 《베놈 3》은 그 불안하고도 불완전한 세계를 직시하며, 진정한 공존이란 두려움 속에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응답을 관객에게 요청한다.
한 줄 평: 공존을 말하는 괴물, 그 안에서 인간은 결국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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